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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 진심 2024년 5월 (3-3) 화 피렌체1

헬* 님 ・ 2024-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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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4 화요일 - 피렌체 ( 첨부파일 순서대로 대문 사진이 들어가는 것을 깜빡하고 사진을 변경하다 보니 재작성 하게 되었다. 계속 수정 예정) 

지난 밤에 피렌체에 도착해서 미켈란젤로 광장(언덕)에서 피렌체 전체 풍경을 감상했다. 석양이 아름답다지만 일찍 도착해서 석양은 보지 못했다

저멀리 보이는 피렌체 두오모와 베키오 다리는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미켈란젤로 광장에 다비드상( 다윗)은 가품이다. 멀리서 보면 머리가 엄청 커서 비율이 안맞다 생각이 되지만, 동상 가까이 다리쪽에서 바라보는 시각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베키오 다리는 줌인을 과하게 한 싸이즈. 피렌체 시내 관광을 꿈꾸는 밤이다. 


위의 사진에서 다비드상 (가품) 을 보며 여행 중에 진품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진품은 아카데미 박물관에 전시) 미켈란젤로 다큐를 보며 조금이나마 이해해본다

이렇게 보니 비율은 또 완벽한 것 같다. 다큐에 대리석까지 보여주는데, 알고 보니 원래의 대리석을 손상시키지 않고 원래의 크기( 높이, 품길이) 를 깍아서 만든 엄청난 조각이라고 한다  

다큐에서 좋은 대리석 원석을 보고 너무 좋아하던데 저런 조각을 만들 수 있다면 나라도 가슴이 뛸 것 같다. 진짜 신기하다 저 큰조각을 어떻게 이렇게 조화롭게 만들었을까 싶다 



아래 진품 사진 (홀로냐니 블로그 발췌)

이런 시각으로 보니 비율이 완벽한 듯 싶다 . 5m가 넘는 다고 한다. 26살에 미켈란젤로가 이걸 조각했다고? 맙소사

다비드의 라틴어 의미는 '강한 손을 가진자' 라고 한다. 골리앗을 쓰러뜨리기 전에 결의에 찬 모습?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공부를 더 해야겠다  

기독교에서 다윗의 이미지는 훗날 왕이기도 하지만 어린 소년 막내아들 시절에는 아버지가 남들에게 소개도 안하던 조그만 소년의 이미지인데 의외다.그런 소년이 거대한 골리앗을 물맷돌(돌려서 맞추는 돌) 로 제압한 것이다. 



- 산 로렌초 성당 

메디치가의 성당으로 두오모의 쿠폴라를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1460년의 르네상스식 건물이다.

메디치 가문의 인사들이 묻혀있는 곳이라 한다. 내부에는 메디치가의 소장품이 있는데 도타텔로의 설교단, 필리포 리피의 수태고지,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하고 도나텔로가 장식한 구성구실 , 라우렌치아나 도서관, 미켈란젤로가 만든 신성구실 ( 장례 예배당) 이 있다고 한다

 


- 메디치 가문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은 꼭 알고 가야 한다. 
메디치 가문은 은행업( 드라마에서는 사채 업자라고  경쟁 가문들로 부터 비난 받음) 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공화정 체제인 피렌체에서 군주와 다름 없는 권력을 행사 했다. 
메디치는 의사를 의미하며 여섯 개의 원은 알약을 연상시킨다거나  또 다른 설은 말을 괴롭히는 거인이 휘두른 철퇴를 방패로 막아내다 생긴 자국이라고 한다. 여섯개의 원은 메디치의 선조가 죽을 힘을 다해 거인과 맞선 것을 기념한다
300년이나 피렌체를 지배하면서 시민들의 지지를 이끌었고 피렌체 사람들은 코시모 디 조반니 데 메디치와 그의 손자 로렌초 디 피에로 데 메디치를 국부 , 위대한 자라는 호칭을 불러줬다고 한다.  

코시모는 종교회의의 참석한 플라톤 연구가들에게 감명 받아 플라톤 아카데미를 건립하고, 그 이후로 몰린 지식인들, 미술가들 등이 함께하면서 고전 문화 연구의 중심지가 된다. 

코시모 데 메디치에의 시대에 건축가 미켈로초, 브루넬레스키, 화가인 안젤리코, 필리포 리피, 베노초 고촐리,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 조각가인 도나텔로, 기베르티, 루카 델라 로비아등 많은 예술가들이 후원을 받아 성장 했다 
이후 로렌초 데 메디치는 예술가들을 정치.외교적으로 활용한다. 교황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성당 건축장식에 페루지노, 기를란다요, 보티첼리 등을 보내는 등 칼 없이 평화를 유지한다 

영국 드라마 메디치 오브 플로렌스도 참고할 만 하다. 이탈리아 내용인데 영드라니 의아스럽긴 하다

메디치 효과- 서로 관련이 없는 이종이 결합해 폭팔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뛰어난 생산성을 이끌어내는 것을 메디치 효과라 하는데, 이 말의 기원이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다. 과거 예술가와 귀족가문과의 관계는 지금의 스포츠 스타와 기업간의 관계와 비슷했다. 
당시 4명의 교황을 배출한 메디치가는  예술가들에 대한 진심 어린 존경으로 지속적으로 후원을 했기에  피렌체를 중심으로 르네상스 시대가 열릴 수 있었다.   
메디치 가문의 상징은 6개의 구슬, 다이아몬드, 거북이다.
메디치 가문이 다이아몬드처럼 견고하게 빛나고 영원할 것. 거북이는 급할수록 신중하라는 격언은 거북으로 시각화 한 것 이다  

* 메디치 리카르도 가문의 문양, * 조토의 종탑 *  반디넬리의 조반니 델레 반데 네레 기념물(1540) * 세례당( 북문) *오벨리스크 



컨시어즈님과 피렌체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시뇨리아 광장을 둘러 본 후에 우피치 미술관에서 안영주님을 만나 설명을 듣기 시작한다. 입장 전부터 왜 이렇게 속닥거릴까 싶었는데 이탈리아는 가이드들에 대한 통제가 엄청나다. 물론 미술관 내부에서는 이어폰으로 제대로 들을 수 있다. 
 
- 우피치 박물관 
사무실을 뜻하는 우피치는 메디치 가문의 코시모 1세 메디치가 사법기관 관료들의 관청사 용도로 1561년에 짓기 시작해서 아들 프렌체스코 1세 때 완공 되었다. 
두개의 긴 건물이 복도로 이어진 'ㄷ'자형 으로 조르조 바사리가 설계하고 내부 장식까지 총감독 했다고 한다

우피치 미술관은 메디치 가문의 미술 작품을 보관하기 위해 시작되었지만, 이 미술관이 특정 가문의 영예를 과시하는 공간에서 벗어나 공공 미술관으로서 가능했던 것은 마지막 후손인 '안나 마리아 루이자 데 메디치' 덕분이라고 한다. 
남동생 '잔 가스토네 데 메디치' 대공이 후사 없이 생을 마감하고 자신 역시 자식 없이 미망인이 되어  피렌체와 토스카나 지역의 통치권을 포기하면서 가문 소유의 모든 것을 양도 하고 조건 없이 미술관과 피티 궁전 로마 등 각지의 저택에 가득한 미술 작품, 각종 보석, 가구 등을 맡기면서 단호한 조건을 달았는데,  국가의 영예를 위해 바치는 것이므로 피렌체 시민의 공익에 보탬이 되어야 하며, 어떤 경우에도 피렌체 외부로 유출 해서는 안된다고 못을 박았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작품들이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 한 도시에 집약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우피치 미술관은 동관과 서관으로 나눠지고 3층이다. 2시간 관람을 하면서 탈진 할뻔 했는데( 사진 찍으러 혼자 바쁘게 다니느라;; ) 물 좀 마시며 관람하시길 바란다  


* 미술관 입장전에 볼 수 있는 동상들 (블로그 낭만 나그네 이탈리아 여행기에서 발췌)
미술관 건물의 호위무사처럼 아래 동상들이 위치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누가 누군지 얼굴도 구분도 안되고 업적도 몰랐지만 여행중과 여행후에 공부하면서 알게 된다.  



직접 찍은 사진에 대한 정보를 알기 위해 책을 샀다. 속이다 시원하다. 아무리 설명을 열심히 들어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 우피치 미술관에서 꼭 봐야할 그림 100 김영숙 지음. 그림의  해상도는 너무 별루여서 그림을 알아 볼 수 조차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도록을 사올 것을 ) 

**  세명의 마에스타 

마에스타는 마리아와 예수가 옥좌에 앉아 있는 그림을 의미한다. (황제나 최고 지위의 인물을 존경을 담아 부를 때 붙이기도 함) 
세 거장이 그린 마에스타는 천상을 상징하는 황금빛 바탕, 딱딱한 표정의 인물들, 중심이 되는 마리아와 예수를 다른 인물들 보다 크게 그렸다는 점에서 이 시기 활동하던 화가들의 양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평면적인 중세 그림에서 벗어나 그림 속 공간을 원근법적으로 구성하고 인물을 뼈와 근육을 가진 존재로 그리기 시작했다 

사진1 좌 - 두초 디 보오닌세냐의 마에스타 (루첼라이 성모) 
사진2 우-상  조반니 치마부에의 산타트리니타의 마에스타 (둘글게 묘사된 마리아 발치의 계단이나 하단의 건물, 비스듬한 옥좌와 함께 몸을 살짝 돌린 자세에서 공감감을 느낄 수 있다)
사진3 우-하 조토 디 본도네의 마에스타 (스승인 치마부에나 두초 보다 자연스러운 분위기, 건축물을 연상케 하는 옥좌의 공감각과 , 주변 성인과 천사들의 몸은 사실적이고 옷 속에 감춰진 신체가 느껴진다. 치마부에의 천사들이 카드 패를 포개놓은 듯 하고, 두초의 천사들이 옥좌 주변을 떠도는 느낌이 든다면, 조토의 천사와 성인들은 두 발을 땅에 단단히 고정 시킨 단단한 몸을 가진 존재로 보인다. (조토의 종탑을 보게 될텐데 그 조토 맞아요)
세 거장이 그린 예수는 '아기' 라기 보다 '어른 아이'로 보이는데 이는 인간을 구원할 신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기 위함이다 


시모네 마르티니 & 리포 멤미 "수태고지"
「명화1001」 두치오 부오닌세냐의 제자였던 시모네 마르니티(1284~1344경)는 시에나 화파에서 가장 창조적이며 영향력이 있었던 화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스승 두치오가 발전시켰던 삼차원적인 효과를 내는 기법을 바탕으로 좀 더 세련된 윤곽선. 표현의 우아함. 평온한 분위기를 그림에 더하면서 이 기법들의 효과를 증대시켰다.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시에나 대성당의 제단화는 성모의 일생을 보여주는 여러장의 패널화인데, 그 중에서  <수태고지>는 특별히 시에나의 수호성인인 '성 안사누스'에게 바쳐진 작품이다.
그림 양쪽에는 시에나의 성인인 '성 안사노'와 성녀 막시마가 있는데,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시절에 박해를 받고 순교한 이들은 각각 왼손에 순교를 상징하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다

안사노가 오른손에 들고 있는 깃발은 부활을 의미, 윗쪽 원형에 예레미야, 에스겔, 이사야, 다니엘 4명의 예언자가 두루마리(성서)를 펼쳐 들고 있다 

중앙 그림은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임신할 것을 알리는 장면. 상단 가운데 천사들에게 둘러싸인 비둘기가 마리아를 향해 있는 힘껏 성령을 불어넣고 있다
가브리엘의 날개는 공작의 날개로 죽어서도 썩지않는다는 전설이 있고 이는 예수의 부활을 상징한다

황금빛 배경(천사의 입에서 마리아의 귀쪽으로) 에는 천사의 입에서 나오는 (아베 그라티아 블레나 도미누스 테쿰  "은총 가득한 이여,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라는 말이 금박 부조로 새겨져 있다. 손과 머리에 올리브 나무 가지는 승리를 상징. 백합 꽃병은 마리아의 순결, 마리아는 몸을 비튼 채 한손으로 망토를 끌어 당겨 감싼다. 이 자세는 갑작스러운 천사들의 출현과 혼전 임신 소식을 전해 듣고 당혹스러워 하는 인간적 동요를 보여준다.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라는 말은 두려움 속에서 큰 의지가 되는 문장이라 기억에 남는다  
 
고딕 말기에서 르네상스로 접어들던 시기, 상업으로 부를 축적한 신흥 부르주아의 취향이 사실적 미감을 앞세우는 동안, 왕족과 귀족들은 지역을 막론하고 이처럼 화려하고 우아하면서 세련되고 장식 적인 그림을 선호 했는데, 이를 '국제 고딕 양식'이라 부른다



아래 그림 1-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동방박사의 경배" - 표범이나 원숭이 사자 낙타등 특이한 모양의 새 등 이국의 동물을 등장 시킨다. 동방박사들을 청년 장년 노년으로 표현했는데 이는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전 인류가 메시아의 탄생을 경배하고 있음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그림 2- 암브로조 로렌체티  "성전에 바침" -시에나에서 태어난 암브로조 로렌체티는 두초 디 보오닌세냐에게 그림을 배웠다. '성전의 바침' 은 시에나 대성당 예배당을 장식한 세 폭 제단화 중 일부로 태어난지 40일이 지난 아이를 성전에 데리고 가서 정결의식을 하는 유대인의 풍습을 그린 것이다. 정결의식의 주인공은 예수다.  왼쪽 가장자리에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은 양미간을 찌푸리고 있는데, 이는 세상의 죄를 대신해 죽을 아기 예수에 대한 걱정과 근심을 의미한다 ( 저 때 요셉이 알았을까 의문이지만 동정녀 마리아에게 태어난 아이가 걱정되었을 것 같긴하다 )  뒤로 갈 수록 작아져 깊은 공간감을 만들어 낸다 

그림 3 -파울로 우첼로 "산로마노 전투" - 우첼로는 새를 의미하는데 (별명) 피렌체가 기용한 용병 대장 '니콜로 다 톨렌티노'가 시에나 군대의 장수 '베르나디노 델라 치아르다'를 말에서 떨어트린 장면을 담고 있다. 그림 왼편 '니코로 다 톨렌티노' 의 긴 창은 오른쪽 시에나 군을 향해 길게 뻗어 있는데,  방패나 창, 말등의 배열은 수학적인 원근법에 맞춰 그린 것으로 과도하게 원근법에 몰두한 느낌이다 

그림 4 - 마사초의 "성모자" - 마솔리노 다 파니칼레는 1424년 부터 1년 동안 제자 마사초와 함께 브란카치 예배당 벽화를 공동 작업했다. 마솔리노는 국제 고딕 양식에 가까운 화가였다면 마사초는 신체의 단단한 양감을 본격적으로 묘사하고 수학적으로 잘 계산된 원근법을 구사하는 사실주의적 르네상스 미술을 발전 시켰다
마사초가 그린 성모자속 포대기에 돌돌 말린 아기 예수는 어른 아이가 아닌 천진난만한 아기의 미소로 엄마의 팔을 잡아 당기고 있다. 마리아와 아기 예수 사이의 인간적인 친밀함 역시 중세를 벗어나면서부터 그림에 등장했다. 마사초는 빛의 명암을 이용해 인물의 입체감을 더욱 두드러지게 했다.  



아래 사진
미술관 내부에서 이동 중에 베키오 다리 창문 뷰 

- 베키오 다리로 이어지는 "바사리 회랑"  
'바사리'는 '코시모 메디치'의 명에 따라 우피치 건물과 아르노 강 건너 대공의 저택이 피티 궁전까지 800미터 길이의 통로도 만들었다고 한다
 
코시모 1세는 회랑이 지나는 베키오 다리 위에 빼곡 하던 푸줏간을 모두 없애고 지금처럼 보석 가게로 채웠다
(미술관 내에서 볼 수 있는 베키오 다리와 이어진 저 통로가 바사리의 회랑인 듯)
오후에 베키오 다리를 갈 수 있는 자유시간이 주어지는데 그 때 찍은 보다 이 사진이 더 잘 나 온 것 같다. 순식간이지만 지나가는 중에 담아보길 바란다 

바사리 회랑은 일반인이 지나가 볼 수는 없고 영화 '인페르노 1시간 22분  '에서 주인공들이 이 공간으로 잠깐 지나가는 장면이 있기는 하다 
"회색문을 통해 들어가면 베키오 다리와 바사리 회랑을 지나서 궁전으로 연결된다"고 대사가 나온다. (티빙에서 시청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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