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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 진심 2024년 5월 (3-3) 일, 월

헬* 님 ・ 2024-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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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날 5/12 오르비에토-아시시 

둘째날 5/13 페루자 - 카스틸 리오네 델 라고- 피렌체

 

- 오르비에토 치비타 (시비타 디 반뇨레쪼)

 

이탈리아 수도인 로마를 가로지르는 테베레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움브리아 지방이 나온다
반도 중간에 위치한 이 지역은 페루자를 비롯해 아시시와 인구 2만 명의 작은 도시인 오르비에토가 있다

오르비에토는 고도 195m  바위산 위에 있는데 900년 역사를 가진 성벽이 도시를 에워싸고 있어 천혜의 요시 도시로 별칭은 ‘하늘 도시’ 이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고대 에트루리아인들의 12개 도시중 하나이다

언덕 위 작은 마을이 있는데 느림의 미학이 느껴지는 슬로우 시티 운동이 시작된 곳이다 (사진 없음)


링켄 설명 : 오르비에토에는 대형마트와 패스트푸드 인스턴트 음식을 판매하는 곳이 없다. 왜 그럴까?

1980년대 로마 스페인 광장에 맥도날드가 문을 열었을 때 몇몇 도시에서 획일화된 인스턴트 음식을 반대하고 각 도시 고유의 맛을 지키자는 취지로 슬로우시티(Slow City) 운동'이 시작되었고 그 대표적인 도시가 오르비에토이다



- 두오모 

오르비에토에 홀로 웅장하게 서 있는 두오모 ( 마을의 대표 성당) 1290년부터 300여 년에 걸쳐 공사가 진행 되었다 
로마네스크양식과 고딕양식이 공존된 독특한 두오모 이다 
현무암과 하얀 석회암으로 독특한 줄무늬는 시에나의 두오모와 비슷한 느낌이다. 전면에 금빛 모자이크와 로렌초 마이타니의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성당 내부에는 기적의 성포와 프라 안젤리코, 루카시뇨젤리의 프레스코화가 있다. 르네상스 시대 위대한 도안가 루카 시뇨렐리의 '최후의 심판'은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에 영향을 준 작품이라고 한다 

 







-오르비에토 산파트라치오 우물

1527년 교황 클레멘스 7세의 명에 의해 만들어진 깊이 62m 지름 13m우물은 72개의 창문이 있고, 내려가는 계단과 올라오는 계단이 만나지 않아 비밀이 보장된다. (식수)을 싣는 나귀가 내려가고 올라올 때 만나지 않게 설계 되었다

같은 건축 기법 (나선형 계단)은 바티칸에서도 볼 수 있다. 그 옛날에 정말 대단하다 
다녀오면 죄사함을 받는다고 했던가 ;; 끝까지 다녀오면 힘들어서 올라올 때 회개가 되긴 하더라.

( 한번 내려가면 끝까지 내려가야 하므로 무릎이 아프신 분들은 안내려 갈 것을 추천, 또는 조금만 맛보기로 내려갔다 올 것




- 아시시

이탈리아 중부의 수비시오산 위에 위치한 약 3만명 정도의 작은 도시로, 로마에서 당일치기 여행으로 인기가 많다고 한다. 팀원중 한명도 아시시를 엄청 고대 해서 뭔가 싶었는데 기대할만 했다.  
성 프란체스코가 태어난 도시라 해마다 백만명이상 순례자와 관광객이 찾아온다. 복잡한 골목과 꽃 장식 발코니가 인상적이다. 돌을 이용해 만든 성벽과 거리, 집들은 중세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

아시시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로 성 프란체스코를 기리기 위해 만든 성당이다. 고딕 예술 13세기에 완성된 후 14세기에 장식이 추가 되었고 외관은 거의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경사를 이용해 상하 2층으로 지었으며 성당 벽면은 중세 말기의 유명한 화가의 작품으로 채색되어 있다 

성당 내부에는 성 프란체스코가 입던 옷과 유품이 전시되어 있고 지하에는 1818년에 발견된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1997년 지진이 있었으나 내부 벽화는 보존 되었다.

성당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사진을 찍지 못했다 ㅠㅠ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성 프란체스코의 일생

 

주여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라는 평화의 기도문으로 유명한 성 프란체스코(San Francesco. 1182~1226)는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창시자이자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이다.

그의 청빈한 삶과 신앙은 가톨릭 신자에게 많은 감명을 주었으며, 10 4일은 그를 기념하는 가톨릭 축일로 지켜지고 있다.

아씨시의 부유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난 성 프란체스코는 방탕한 젊은 시절을 보내다가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 1년간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어렵게 마을로 돌아온 그는 예전의 삶에 더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여러 가지 종교적인 환시를 경험하며 깨달음을 얻게 된다.

 

결국 성 프란체스코는 세속적인 모든 부와 명예를 미련 없이 버리고 기도청빈순결복종을 중시하는 프란체스코 수도회를 창립해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았다그는 가난하고 병든 자들에게 사랑을 베풀며 여러 기적을 행해 마침내 후대에 성인으로 추앙 받는다.

 

그가 살아온 길은 산 프란체스코 성당 벽화에 자세히 그려져 있다

그림 속 성프란체스코는 성인을 의미하는 후광이 표시되어 있으며수도회 창립 후에는 갈색 수도복에 삭발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또 아씨시의 성녀 키아라(클라라)에게 권유해 여신도 수녀회(키아라회)를 설립케 했으며만년인 1224년에는 자신의 몸에 성흔을 받기도 했다.

 

상부 성당 벽면에는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가 28개의 프레스코화로 좌우 벽면에 그려져 있다. (프란체스코 관련 내용은 인터넷에 엄청 많다)


1. 한 청년으로부터 훗날 교회의 존경을 받으리라는 예언을 들은 성 프란치스코
2. 자신의 옷을 벗어 가난한 이에게 주는 성 프란치스코

3. 꿈에서 
십자가가 새겨진 갑옷으로 가득 찬 궁전을 본 성 프란치스코
4. 성 다미아노 성당에서 기도하던 중 쓰러져가는 교회를 일으키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성 프란치스코
5. 모든 옷을 벗어 아버지에게 주면서 세속의 영화를 포기하는 성 프란치스코

6. 꿈에서 
조반니 라테라노 대성당을 떠받치는 성 프란치스코를 본 교황 인노첸시오 3
7. 
프란치스코회의 설립을 인가하는 교황 인노첸시오 3
8. 불마차의 환시를 본 
프란치스코회 수사
9. 하늘에 걸려 있는 의자의 환시를 본 
프란치스코회 수사
10. 아레초에서 마귀를 쫓아내는 성 프란치스코

11. 
술탄 앞에서 신앙을 증명하는 성 프란치스코
12. 기도를 드리던 중 
공중부양하는 성 프란치스코
13. 그레초에서 은둔 생활을 하면서 첫 구유를 만든 성 프란치스코

14.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는 성 프란치스코

15. 새들에게 설교하는 성 프란치스코

16. 첼라노 기사의 
고해성사를 듣는 성 프란치스코
17. 
교황 앞에서 설교하는 성 프란치스코
18. 
파도바의 안토니오의 설교에 나타나 축복하는 성 프란치스코
19. 성흔을 입은 성 프란치스코

20. 사망하면서 흰 구름을 타고 영혼이 올라가는 성 프란치스코

21. 아고스티노 수사가 임종할 때 나타난 성 프란치스코

22. 성 프란치스코의 관을 열고 
성흔을 확인하는 예로니모
23. 성 프란치스코의 사망을 슬퍼하는 성녀 
키아라와 수녀들
24. 프란치스코를 
시성하는 교황 그레고리오 9
25. 교황 그레고리오 9세가 성 프란치스코의 성흔을 의심하자 교황의 꿈에 나타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를 병에 채워 보여주는 성 프란치스코
26. 죽을 병에 걸린 환자를 치유하는 성 프란치스코

27. 부인을 소생시켜 
고해성사를 한 후 다시 잠들게 한 성 프란치스코
28. 회개한 이단자를 감옥에서 구하는 성 프란치스코


성당 앞 잔디밭에 청동상은 '성 프렌체스코의 회심(귀환)'이다.

청년 시절 기사가 되려고 전투에 참여했다가 포로로 잡혀 1년간 옥살이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올 때 
"
주님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너의 고향으로 돌아가라" 그러면 네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듣게 될 것이다 "라는 음성을 듣는 순간을 표현했다

엄청 고민이 되었을 것 같다.  

프렌체스코는 허물어져 가는 산 다미아노 성당에서 "나의 집을 다시 세워라, 나의 집이 허물어져 가고 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아버지 재산을 내다 팔아 성당 건물을 보수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줄 돈이 부족해서 아버지 상점에서 옷감을 팔기도 했다
그러다가 주님께서 말씀하신 '허물어져 가는 나의 집' '건물'이 아니라 교회의 '내적 삶'이라는 것을 깨닫고 아버지와 주민들 앞에서 옷을 벗어 던지고 빈 몸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 다녔다고 한다 


팀원들끼리 한말이 자기 돈이 아니니까 저럴 수 있는거 아니냐며 ;; 자기가 모은 재산이면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마디씩 했다 
그런 아들을 존중해주는 가족들도 대단하다. 성자는 혼자서 그 길을 갈 수가 없는 것 같다  

가끔 집안 마다 한두 자녀씩 헌신하는 자녀로 키우겠다 기도하고 교육시킨다. 성프란체스코 부모님도 아마 그런 기도를 했을 것이고 훗날에는 아들을 축복해주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 성당 반대편 마치니거리 가는 방향 (사람들이 많이 걸어가고 있는 길쪽이 마치니 거리 가는 방향이다)

아시시의 이미지는 사진과 같이 '깨끗' '조용' '성스러움'자체다.

보이는 건물들 중에 호텔들도 있을 텐데 저 호텔에서 시간을 보내는 분들이 너무 부러웠다. 아시시에서 일주일 살기를 해보고 싶어진다 



마치니 거리

성당과 코무네 광장을 연결하는 산 프란체스코 거리, 여행자를 사로잡을 만한 아기자기한 기념품점, 성물 상점, 패브릭 제품, 장식품등 움브리아 주의 특산품점이 있다 



- 코무네 광장, 프란체스코 생가 누오보 성당, 코무네 탑, 성 클라라 성당 앞 광장 18세기 분수 

그날 따라 분수 인근에서 북치는? 행사가 있었다. 젊은분들이 18세기 분수 앞에서 즐기면서 단체로 북을 치는 것을 보니 마음이 웅장해지더라


기원전 1세기에 지은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의 신전. 1539년 부터 성당으로 쓰이고 있다
광장 뒤편에는 성프란체스코의 생가이자 숨을 거둔 것으로 추정되는 누오바 성당이 있다
수직선과 수평선의 길이가 동일한 그리스식 십자가 형태로 지었다고 한다
성프란체스코가 옷을 팔던 상점과 아버지의 의해 감금되었던 계단통 등이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나보다   




산타 키아라 성당

산타 키아라 성당을 갔었는지 기억이 안나지만 일단 사진이 없다.

키아라 성당의 주인공 성녀 클라라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산타 키아라 성당은 흰색과 장미빛 대리석과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용해 소박함과 단정함, 여성스러움을 강조했다.  

귀족의 딸로 태어나 성 프란체스코의 설교에 감동해 18세에 집을 나와 그의 첫 제자가 되었다. 이후 검소한 키아라 수녀회를 설립했다고 한다



자유 석식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으면 미리 검색도 해보고 했을 텐데 갑자기 식당을 찾아가려니 몹시 당황했다 

다행히 어른 부부께서 컨시어즈님과 우리에게 한턱 내셨다 

이탈리아 맥주잔 기본 싸이즈가 재밌어 사진을 찍어봤다, 콜라등에는 항상 레몬을 넣어준다. 이탈리아의 모든 탄산음료에는 한국보다 탄산이 적게 들어간 느낌이다. 김빠진 콜라느낌? 정책인것 같기도 하다.  


아래 동상은 부부는 아니고 프란치스코와 그의 어머니 동상이다. 두 손 꼭잡은 모자상은 어쩐지 찡하다. 
어머니가 저 철끈을 끊어 줬다는 의미 인 것 같은데... 역시 아버지들은 강하게 통제를 하고 어머니들은 자녀가 갈길을 지지해주는 것 같다. 프란치스코 아버지는 언제쯤 아들을 인정했을까... 

 




둘째날 5/13 페루자 - 카스틸 리오네 델 라고- 피렌체 도착 


페루자는 움브리아주 지역 중심부에 위치한다

페루자는 문화 행사로도 유명한데, 특히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재즈 페스티벌 중 하나인 움브리아 재즈 페스티벌과

유명한 페루지나 초콜릿 공장이 있는 초콜릿 허브로서의 위상을 기념하는 유로 초콜릿 페스티벌이 유명하다. 같은 브랜드 초콜릿 상점이 있는데 귀국 선물로 초콜릿을 사봐도 좋다  


언덕 위의 지하 도시로 가기 위해 타는 열차  미니메트로 '푸니쿨라' 여러 정거장이 있다 





-
페루자에 있는 지하 도시 '로카 디 파올리나' 조감도 


한 때 페루자의 군주였던 로카 파올리나는 잔혹한 교황, 바오로 3세가 소금에 매긴 세금에 반발해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교황군에게 패배하고 몰살을 당했고 가문 전체가 성채의 바위 아래 파묻혔다고 한다. 그들이 궁전 7개의 교회 , 138채의 집도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엄청난 지하 도시를 설명할 길이 없어 구글에서 지도를 찾아봤다.

한글로 여러번 검색 해도 잘 나오지 않더니  ORVIETO UNDERGROUND map 으로 보니 내용이 많이 나온다  


오르비에토 지하도시(이탈리아어: Orvieto sotterranea)는 고대 로마의 토착세력인 에트루리아인이 만든 도시로, 사유지를 포함해 매우 광범위하게 만들어져 있다.

아직도 이 도시가 어떤 용도로 만들어졌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구덩이에 홈을 파서 계단으로 이용한 흔적이나 비둘기를 식용으로 기르는 장소 , 우물, 지하 무덤 등이 인상적이다.

현재는 일부만 와인 저장고로 사용되고 있다. 하루에 2번 개방되며, 가이드 투어를 통해서만 입장할 수 있다

외부와 단절되는 철통같은 방어가 느껴진다

 

( 홈페이지 설명 번역 : 이 요새는 당대 가장 유명한 군사 건축가 인 안토니오 다 상갈로 (Antonio da Sangallo)에 의해 설계되었으며, 강력한 바글리오니 (Baglioni) 가족의 집을 포함한 도시의 4 분의 1을 파괴 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요새는 두 개의 별도 요새로 구성되었습니다 : Landone 언덕의 위쪽 요새와 Tenaglia로 알려진 평원의 아래쪽 요새는 3 개의 요새화 된 보도를 통해 전자와 연결되었습니다.페루 지니는 항상 그들을 싫어했고 1860 년 페루자가 이탈리아 왕국에 합병 된 직후 구조물의 지상 부분이 파괴되었습니다.

지하 로카 파올리나(Rocca Paolina)는 파르티지아니 광장(Piazza Partigiani)과 이탈리아 광장(Piazza Italia)을 연결하는 에스컬레이터와 같은 시간, 즉 매일 오전 6 15분부터 오전 1 45분까지 일반인에게 공개됩니다. 요새 내의 일부 방에는 현재 전시 센터(: CERP, 로카 파올리나 전시 센터)가 있으며, 전시 및 행사에 사용되며, 이 웅장한 옛 랜드마크의 역사를 추적하는 로카 파올리나 박물관이 있습니다.)


지하도시 입구 내부 출구  


설명중인 사무엘 컨시어즈님과 팀원들 


페루자 사교 중심지 코르소 반누치 거리


당시로서는 유명한 화가 였던 페루지노의 본명이 반누치 Vannucci 인데 그는 중세 움브리아 미술계를 대표하며 제자 라파엘로를 길러 냈다고 한다.

화가 라파엘로는 우르비노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청년기인 1500년경에 페루자로 와서는 당시 움브리아 미술계를 대표하는 페루지노의 제자로 들어가 도제 수업을 받으며 미술을 배웠다.




- 페루자 대성당 

자리를 옮겨가며 무릎으로 기도하는 청년 ㅠㅠ 사진만 봐도 내 눈물 버튼 이다.  저 청년의 기도 제목은 과연 무엇이길래 자리를 옮겨가며 오랜 시간 기도를 할까

나는 그의 기도 제목을 알 수 없지만 그 기도를 들어 달라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이번 여행에서 이 사진이 나에게는 1번이다  


마리아 결혼반지 (가품)로 유명한 성당이다 





- 페루자에 폰타나 마조레 분수 


페루자의 심장부에 있는 2단 짜리 폰타나 마조레 대분수는 자유도시로서 페루자의 업적과 독립을 기리는 성공의 상징이다  

이 분수가 있는 광장을 11 4일 광장이라고 하는데 몇 분의 자유시간이 주어지는데 성당 올라가는 계단에 앉아 분수를 바라보며 쉬는 시간이 힐링이다


11 4일 광장은 에트루리아 사람과 로마 사람 모두 이 지역을 고대 정착지의 중심지였고 

중세 시대에 페루자가 독립된 공동체로 번성했을 때 당시 그란데 광장(Piazza Grande)으로 불렸던 광장 주위에 궁전과 교회가 세워졌다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날을 기리기 위해 1918 11 4일 광장(Piazza IV Novembre 1918)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275년에서 1278년 사이에 분수대를 건설한 아버지이자 아들 건축가인 니콜라 피사노(Nicola Pisano)와 조반니 피사노(Giovanni Pisano)가 조각한 석조 부조를 볼 수 있다  

분수대는 도시로 샘물을 나르는 수로의 건설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폰타나 뜻 자체가 샘물이다.


웨딩 케이크를 연상시키는 빛 바랜 핑크색과 흰색의 단은 두 개의 다각형 석조 물받이는 물을 내뿜는 암포라를 잡고 있는 세 님프의 청동상이 에워싸고 있다.

분수대 각 단의 정교한 세부 장식을 보면 아래쪽 물받이에는 대리석으로 조각된 50개의 개별적인 부조가 있고

인간의 창조와 타락을 묘사하는 이미지는 물론 골리앗과 삼손 같은 다른 성경 속 인물도 볼 수 있다.

다른 조각은 교양과 철학의 학문을 상징하고 로마의 건국을 묘사한다


중간 물받이에는 24개의 유명한 인물상이 장식되어 있다.

각 동상 아래에 있는 이름을 확인하면서 다윗 왕과 세례 요한과 같은 인물도 찾아보자

물받이의 이미지 시퀀스는 성 베드로의 동상에서 시작하여 우화적 승리의 동상으로 끝난다.




배경 건물은  프리오리 궁전인데 입구를 지키고 있는 페루자의 상징 그리핀과 사자의 청동상이다 


페루자 거리  초콜릿 상점에서 기념품으로 초콜릿을 사봐도 좋다 


페루자 역사의 흔적 


구시가지와 움부리아 평원 



-카스티릴오네 델 라르고 (호수)  트라시메노 호(호수) 가 보이는 리오네 성 ( Rocca de Leone)


요세 설명 : 중세 요새 역사

불규칙한 오각형 모양이 특징인 이 요새는 에트루리아 아크로폴리스의 유적 위에 서 있으며, 그 중 성벽이 계속 보이며 39m 높이의 삼각형 탑과 뾰족한 벽을 강화하는 4개의 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중 2 개는 16 세기 상반기에 지어졌으며 둥근 구조가 대포의 공격에 더 강했기 때문에 원형 모양입니다.

이 건축 단지를 지칭하는 데 자주 사용되는 "로카 델 레오네"라는 용어는 당시나 이후의 어떤 문서에서도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건설이 시작된 13 세기 후반부터 페루자 시정촌의 행위에서 항상 요새로 정의됩니다.

중세 요새는 페루자 시정촌을 대표하여 Trasimeno Chiugi 지역을 통제하기위한 전략적 지점이었습니다.

그 중요성과 도시와 영토 사이의 긴밀한 경제적 관계의 증거는 1278 Nicola Giovanni Pisano가 만든 페루자의 Fontana Maggiore에있는 조각 장식입니다.

Augusta Perusia를 묘사 한 동상의 측면에는 Domina Laci ferens pisces, "물고기를 나르는 호수의 여인" Domina Clusii ferens granum, "곡물을 운반하는 Chiugi의 여인"의 이미지가 특권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요새 내부에는 아마도 에트루리아 사원의 유적 위에 세워진 성 필립과 야고보에게 헌정 된 비잔틴 기원의 교회 유적이 있습니다.


- 트라시메노 호(호수)  



리오네성으로 들어가는 코르냐 궁전  



코르냐 궁전 역사 ( 사진 설명이었는데 사진을 넣으면 저장이 잘 안되어 아쉽다. 여기에 들어가면 사실 시큰둥 할 수 있는데 그림의 의미를 알고 보면 더 재밌을 것 같다. 물론 컨시어즈님이 설명은 해주지만 하나도 기억이 안난다  ) 

1500 년대 초반의 Baglioni 궁전을 통합하여 1563 년에 지어진 Palazzo della Corgna Corgna 가족의 즐거움과 여가의 별장으로 태어 났지만 Castel della Pieve의 영지에서 분리 된 이후의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오늘날의 Città della Pieve는 후작의 수도에있는 가족의 거주 궁전으로 변모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저자는 여전히 불확실하며 G. Alessi Vignola 사이에서 논쟁 중입니다.
Palazzo della Corgna의 건물은 거꾸로 된 L 자형 계획으로 발전하며 두 개의 날개를 포함합니다 : 남쪽의 하나는 Ascanio 후작, Diomedes, Ascanio II Fulvio Alessandro의 거주지로 의도되었으며, 서쪽의 하나는 Fulvio 추기경의 비정기 거주지입니다. 지하실을 구성하는 4 층에는 지하실이 1 층에, 부엌과 식품 창고가 지하에, 응접실과 침실이 2 층에 있습니다.
Palazzo della Corgna의 박물관 여정은 8 개의 프레스코 화 된 방이있는 1 층 수준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1574 년에서 1590 년 사이에 Pomarancio로 알려진 Niccolò Circignani가 이끄는 화가 팀에 의해 제작 된이 장면은 Ascanio의 행위와 다양한 신화 및 역사적 주제를 묘사합니다.
이러한 주제의 선택은 확실히 Corgna 가족 주위에 끌리는 작가 집단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특히 궁정 시인 체사레 카포랄리(Cesare Caporali)를 기억하는데, 그는 그의 시 "마에세나스의 정원(The Gardens of Maecenas)"에서 웅장한 정원으로 둘러싸인 궁전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칭찬했습니다.

홀 오브 파리

Palazzo della Corgna의 박물관은 "Hall of Paris"라고 불리는 입구 홀에서 시작됩니다. 천장 중앙에는 포마란시오의 작품이 "파리데의 심판"으로 그려져 있고 그 옆의 팔각형에는 히드라, 다이애나와 엔디미온,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 피라무스와 티스베를 죽이는 헤라클레스가 그려져 있습니다. "affreschi" Ascanio의 조카이자 입양 아들 인 Diomede Corgna Portia Colonna의 결혼을 축하합니다. 모퉁이에있는 4 개의 우표는 콜론 나와의 관계를 보여주며, 왼쪽에는 아스카니오의 형제 인 풀비오 코르냐 추기경의 우표가 교황 율리우스 3 세와 아스카니오와 풀비오의 어머니 인 자코마의 집 인 치오키 델 몬테의 우표와 혼합되어 있습니다. 오른쪽에는 권위 있는 결혼을 나타내는 Colonna 우표로 시작하는 코르그네스코 우표와 Marcantonio Colonna 추기경의 우표가 있습니다


아스카니오의 행적 - 아스카니오의 행위의 전당" 16개의 가짜 태피스트리로 벽을 따라 정책과 군사를 표현한 왕조의 창시자를 기념합니다. Palazzo della Corgna의이 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는 젊은 군인 인 Ascanio가 보여준 용기로 특히 유명한 Genova의 포위 공격을 기억합니다. Pitigliano에서 개최 된 John Taddei와의 결투는 라이벌에게 가해진 유명한 ""의 역사에 남아있었습니다. 스페인 왕 펠리페 2세와의 만남과 아스카니오의 마지막 위대한 기업인 레판토 전투. 또한 아스카니오가 율리우스 3세로부터 "교회의 수호자"라는 막대기를 받았을 때 축하합니다. Diomede Portia의 권위있는 결혼을 축하하는 Corgna Colonna의 우표가 있는 바닥 장식.


룸 페이톤 홀- Palazzo della Corgna " Phaethon 의 홀 "은 태양의 마차를 몰고 재앙과 폐허를 일으키고 목성의 공격을 받아 쓰러진 아폴로의 아들 Phaethon의 신화를 금고에 표현했기 때문에 그렇게 불립니다. 오늘날의 포 강인 에리다노스 강으로 들어가면 측면에는 새벽, 정오, 일몰, 밤의 형상이 나타나고 모서리의 타원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나타납니다. 그려진 이미지는 침실에서 디오메드 후작에게 자신의 가능성을 넘어서는 일을 하지 말고 자연스러운 삶의 리듬을 고수하라고 경고합니다.


아이네이드의 홀-아이네이드 방은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드』의 텍스트를 충실히 따르며 그리스에 의해 파괴된 트로이에서 도망쳐 라치오에 상륙한 전설적인 영웅 아이네이아스의 신화를 묘사하는 장면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그곳에서 그의 후손들이 로마를 세울 것입니다. . 이 외에도 헤라클레스(Hercules), 세레스(Ceres), 불칸(Vulcan) 및 지구의 금성(Earthly Venus)의 형상이 암시하는 디오메데스의 업적은 후작을 통치하는 그의 행동에서도 기념됩니다. 프레스코화의 저자는 Niccolò Circignani이며 GAPandolfi의 두 가지 개입으로 Palazzo della Corgna의 중요성을 증언합니다.

신들의 전당 - "신들의 전당"은 올림픽 신들과 12개의 황도대 별자리가 있는 채광창을 관장하는 목성의 형상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일부 인물은 1930년대 P. Cellini에 의해 복원되었습니다.
트라시메노 전투 홀- 역시 Palazzo della Corgna 내부에 위치한 Ascanius 2세의 방인 "트라시메노 전투 홀"은 중앙 패널에 트라시메노 전투 장면이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 주위에는 행군하는 군대, 함대의 상륙, 전투 장면, 장군의 관용 등 네 가지 전쟁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한니발의 군대와 집정관 가이우스 플라미니우스(Gaius Flaminius)가 이끄는 로마 군대 사이의 유명한 충돌은 기원전 217년에 현재 투오로 술 트라시메노(Tuoro sul Trasimeno) 근처에서 일어났습니다. 깜짝 놀란 로마군은 압도당했고, 이 전투에서 약 15,000명의 군인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명왕성과 프로세르피나의 홀 - 아스카니오의 자매인 라우라 델라 코르냐의 방인 "명왕성과 프로세르피나의 홀"은 프로세르피나 신화와 관련된 장면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세레스는 딸을 찾습니다. 님프 Cyane Ceres에게 납치 사실을보고합니다. 세레스는 명왕성에서 지하세계로 내려옵니다. 목성은 프로세르피나가 1년 중 6개월은 하데스에서 보내고 6개월은 지구에서 보낸다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다산의 여신인 세레스의 모습에서 로라는 아스카니우스의 양자인 디오메데스를 낳고 왕조의 연속성을 허용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족.

카이사르 홀-  코르냐 궁전에 있는 '카이사르의 방'은 수에토니우스의 저서에 이어 디오메데스의 서재를 장식한 카이사르의 생애를 표현한 것으로 일컬어진다. 1589년에서 1590년 사이 S. Savini의 작품인 이 묘사는 체사레의 삶과 그의 대담함, 그리고 위대한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보여줍니다. 가장 중요한 사건 중에는 갈리아인, 독일인, 브리튼인과의 전쟁, 루비콘 강 도하, 로마 권력의 시작을 알리는 파르살루스 전투가 기억됩니다. 왕의 왕관을 거부하는 에피소드에서 그의 외교적 자질이 드러나고 카이사르의 살해로 프레스코 화의 순환이 마무리됩니다. 두 개의 날개 달린 그룹이 지탱하는 금고에는 코르냐 문장이 있고 동쪽 벽에는 문을 통해 궁전과 중세 요새를 연결하는 지붕이 있는 통로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성으로 가기 위한 통로 성벽에 중간 중간에 뚫려 있는 구멍?의 풍경

리오네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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