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실직자의 뉴질랜드 여행기(부제-어느 중년남의 첫 경험)
허준* 님 ・ 2015-12-22
회사에서 짤렸다.
"토사구팽"...이 한 몸 바쳐 충성을 다 했건만 필요가 없어지니 헌신짝처럼 버리다니! 복수하고 말테다!...하는건 그냥 신파를 위해 두들겨 보는 거고, 필자와 같은 파견 근무란걸 하다보면 그렇게 드문 경험은 아니다. 특히 IT 업체에서는 그렇다...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뭐, 아님 말고.
아무튼 이러구 저러구, 어쩌구 저쩌구 하는 사장님의 해고의 변을 백그라운드 사운드로 들으며 내 머리는 퇴직금과 실업 급여를 계산하며 가능한 여행지를 검색하고 있었다. 뭐, 시간이야 백수가 갖게 되는 가장 큰 자산이니 남은건 비용과 의지의 총합일 뿐이다.

이런건 페이크고...일단 놀 궁리를....
이런저런 요소들을 종합해본 결과, 뜻하지 않게 실업이 장기화 된다 해도 2~3주 정도의 일탈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고 본격적으로 여행지를 물색해 보게 되는데...남들 다 가는 '유럽?'...남들 다 가는데를 궂이 남들 다 가듯이 가볼 필요가...'인도?' 더럽다는데...더러운건 싫고...'남미?' 말 안통해.(어딘 통하고?) '미국'? 총 맞기 싫어...'아프리카?'...어디를 어떻게 가야 하는데??? 언제나와 같이 부정의 순환고리를 머리속에 그리며, 어떻게 놀아야 잘 놀았다고 페친들을(물론 '페친들'보다 '페친'에 가깝다는 사실은 잊자) 놀려 먹을 수 있을지 페북에 올릴 사진 구성과 문구를 고민하며 페북을 연 순간...운명처럼 담벼락에 떠 있었던 것이다 '탁PD와 함께하는 뉴질랜드 캠퍼밴 여행'...이란건 역시 신파고 그냥 왠지 모르게 담벼락에 올라와 있었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쏴라!', '생각은 길게 행동은 짧게!'(아닌가? 아님말고), '장고끝에 악수!'...아! 이건 아니고...아무튼 여행은 일단 질러야 갈 수 있다. 그래서 질렀다! 그리고 갔다.
참고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탁재형PD'(이하 '탁피디')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EBS 초절정 인기 다큐 걸어서 세계속...(퍼퍽!)...은 농담이고(크흠) '세계 테마기행'의 전직 PD이자(정말이다!), "귀만 있으면 떠날 수 있는 세계여행, 여행교의 간증집회"라는 웃기지도 않는 타이틀을 걸고 한창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탁PD의 여행수다'의 메인 진행을 맡고 있는 국내, 아니 세계 탑 클래스의 입담'꾼'이다.
'여행수다'를 모르는 분이라도 맥주 한잔과 함께 이 냥반의 입담을 들어보면 왜 필자가 '꾼'에 방점을 두었는지 이해하시게 되시리라. '여행수다'의 팬이라면 매일밤 벌어지는 진정한 '여행수다'를 경험하게 되시리라. 추가로 이분 현직 여행 작가이자 역시 현직 PD이기도 하다.(전직PD라고만 하면 이분 화내심. 화나면 좀 오래감)

이런 분입니다. 접촉사고 내고서 사고 보고서에 그림 잘 그렸다고 좋아하고 계시는...철이 없죠...ㅡㅅ-;(갠적으로는 동안이라 별로 않좋아라 합니다..ㅡㅡ;;)
"진실로 예술적인 영혼은 아름다움에 대한 철저한 절망 위에 기초한다."
- 이문열 '그해 겨울' 中 -
물론 필자가 '예술적인 영혼'을 갖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아마 이런 얘기 어딘가에 두들기고 있는 걸 알면 필자의 친구들은 경기를 일으킬 것이다. 그냥 웃으면 애교고, 아마 대패로 자신들의 팔을 갈고 있거나(닭살 제거를 위해), 조용히 커터칼을 들고 배를 가르려고 하거나(뭘 잘못 먹었나 확인해 보기 위해) 슬그머니 짱돌을 머리위로 들어 올릴 것이다.(미쳤는지 뇌를 해부해 보기 위해) 필자가 이런 간지러운 얘기를 두들긴 것은 단지 필자의 뉴질랜드 여행의 감상을 '좋았다' 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정확하게 묘사한 말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크라이스트 처치 공항에 내려서부터 느낀 선명한 '공기', 맑은 '햇빛', 아름다운 '자연'...그리고 마지막 하나의 세포까지 치유해주는 듯한 평화로운 '분위기...Mood...Atmosphere...' 뭐라고 딱 하나로 말하기 힘든 그것, 그저 '좋다'라고 밖에는 더 말할 수 없는, 2주간의 여행 내내 필자를 감싸고 떠나지 않은 그것 때문이다. 몇 번이나 여행기를 두들겨 보려고 키보드 앞에 앉았다가도 포기하게 만든 그것 때문이다.

어디에 가건, 그냥 멍하니 널부러져 있어도 좋은...다시 가고싶다...크흑..ㅠ.ㅠ.

중년남들(?)에게 최고의 액티비티라고 찬사를 받은 핫 텁. 말하자면 그냥 노천 온천 이다. 자작나무 향과 어우러진 풍경이 기가 막히다. 저기 위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마냥 즐거워하는 우리 컨시어지. 여기서 이 친구의 말할 수 없는 부분의 기능 부전이 밝혀지게 되는데...
기본 일정을 디자인 하고, 각종 현지 예약을 대행해 주면서도 가이드 비용이나 도대체 왜 들어야 되는지 알 수 없는 '라텍스' 홍보 등이 없다는 점, 그리고 원하면 일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 보면 패키지와 자유여행의 장점을 결합 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거꾸로 보면 어정쩡한 상품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필자와 같은 생활인에게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비용' 면에서 그랬다.
어쨌든 '다소' 비싸다는 느낌이 있기는 했지만 필자는 그저 '좋았다'. 캠퍼밴 여행 낭만 있어 보이고 색다른 경험이 될 것 같지만, 막상 여행 초보인 필자같은 사람이 떠나기에는 정보도, 경험도 부족하다. 이러한 필자에게 전 일정을 개인의 의사에 맞게 예약하고, 준비해 준 컨시어지의 존재와 곧곧에서 깨알같이 소개되는 필요는 없지만 알면 즐거운 정보들을 제공하고 언제나 즐거운 수다를 함께 해 준 탁피디님의 존재만으로도 이 여행상품의 가격이 결코 비싸다고만은 느껴지지 않는 이유로 충분했다.
여담이지만 여행 내내 컨시어지에게 키만 멀대같이 커서 할 줄 아는게 없다고 놀리고 - '유능한 컨시어지라면, 도로는 사차선으로 그리고 일직선으로 뚫어 놨어야지!' - 밝힐 수 없는 부분에 기능 부전을 가지고 있다고 놀렸지만(사실이 아니라고 본인은 주장하더군요. 확인할 방법은 없었습니다만), 다 농담이고(정말 농담입니다), 정말로는 두 분께 매우 감사하고 있다니까요.
이번 여행에서의 생각지 못한 소득이 있다면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아니었을까 싶다. 연륜이 뭍어나오시는 두분..아니 세분 형님(탁피디님이 형님이시더군요...제길..ㅠ.ㅠ 동안 싫어..ㅠㅠ), 그리고 착하고 아름다우신 누님, 친구, 동생들...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말할 것도 없지만, 저같은 히키코모리에게도 낯선 여행지에서 2주간의 짧지만 강렬한 동거(?)는 색다른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심지어 키만 멀대같이 큰 컨시어지와는 2주간 한 이불(?)을 덮고 자야 했으니...
형님 누님 친구 동생들 모두 좋은 만남에 감사드려요(송년회때 보자구요^^/)
이상, 끝~~~~~~~~~~~~~!!
P.S1 - 이건 링켄리브에 대한 불만인데 왜 날씨에 대해 제대로 고지를 안했습니까? 가벼운 파카 한벌과 4계절 옷이라니요! 그냥 겨울옷을 가져오라고 했어야죠! 미리 가 있던 컨시어지도 겨울날씨라고 얘기 했다더구만!!! 추워 죽을뻔 했다는건 기억해 주시기를...
P.S2 - 매일 저녁때 마다 벌어지는 요리 경연대회, 번지점프, 핫 텁... 수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너무 힘들어서... 다시... 다시... 아니 그냥 거기 살고 싶은 마음이 너무... 글을 두들기다보니...ㅠㅠ
P.S3 - 여기 게시판 편집기 정말 더럽게 불편하네요..ㅠㅠ. 이거 뭐 글 쓰는것보다 편집하는게 더 힘들어..ㅠㅠ